© Yoon Kalim

Trough Project
Wiederentdeckte Gesichter

트러프 프로젝트 <다시 찾은 얼굴들>


윤가림의 작업은 얼핏 보면 미니멀한 조각들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기능을 가진 가구들 같이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고안한 두 얼굴을 가진 오브제들은 특정 공간 속에서 풍요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스토리텔러’ 역할을 한다. 윤가림의 스토리텔링 오브제들은 대부분 기존에 존재하는 형태를 살짝 왜곡하거나 변형한 것으로 대개가 애매한 형태와 모호한 기능을 갖고 있다. 그의 이러한 조각적 오브제들의 특징은 ‘접촉’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오브제들은 작가의 공예적 테크닉을 통해서 또 다른 형태로 변형되며 이렇게 재 탄생된 이색적 오브제들은 우리와 상징적 혹은 개념적 ‘접촉’을 유도하며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윤가림의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중고품의 수집과 그것의 변형이다. 현대미술에서 이것을 ‘차용’이라 부르며, 이제 차용은 매우 익숙한 방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윤가림의 작업에서 이러한 차용이 어떻게 풍요로운 지평을 열어 놓고 있는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독일문화원에서 만나게 될 윤가림의 <다시 찾은 얼굴들> 역시 기존 형태(화폐)에 왜곡과 변형(자수)를 가하며 화폐(자본)이야기에서 예술과 문화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트로프 프로젝트이 세 번째 작가 윤가림은 유로존 국가들의 ‘잃어버린 통화’를 다시 찾는(?) 이색적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2000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에 간 사람들에게는 프랑, 마르크, 리라 등의 화폐단위가 다소 생소하게 들릴 것이고 그러한 화폐를 본적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유럽은 아주 오래전부터 유로화를 사용했을 거라 믿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윤가림이 유로존 국가들의 유로화 통합 이전 화폐에 관심을 갖게 된 저변엔 어쩌면 그가 영국에서 유학하며 파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왜 다른 유럽국가들은 유로화를 사용하는데 영국은 파운드일까? 다른 나라들의 화폐단위는 무엇일까? 어떻게 생겼을까? 왜 사라졌을까? 아마도 많은 질문들이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물론 유럽의 정치경제사를 통해 알 수는 있지만 사라진 시간과 흔적을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윤가림은 이렇듯 이제 역사의 뒤안 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유럽 국가들의 화폐를 위한 ‘기념비’를 구상했다.

윤가림은 유로존 국가들 가운데 예술가와 인문학자의 초상을 화폐에 사용한 국가들을 조사하고, 이 국가들의 지폐를 이베이 혹은 중고시장을 통해 수집했다. 총 13개국의 22명의 초상화가 담긴 지폐를 수집했다. 작가는 각 지폐 속의 초상화에서 머리카락, 눈썹, 수염 부분에 금은사(tinsel)로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이와 병행해서 윤가림은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정보를 위키페디아에서 수집했다. 윤가림은 자수를 놓은 초상화(지폐)와 그 인물에 대한 정보(텍스트)를 투명 아크릴 박스에 배열한다. 투명하기 때문에 양면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이 투명 아크릴 박스는 초소형 관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기념패처럼 세워 둘 수 있도록 스텐레스 스틸로 다리가 제작되었다. 폴 세잔느, 알브레이트 뒤러, 클라라 슈만, 주세페 베르디, 페르난도 페소아 등 화폐 속의 유명 예술가들의 얼굴은 작가가 금은사로 직접 한 땀 한 땀 수 놓은 ‘자수’와 함께 ‘다시 찾은 얼굴’이란 기념비가 되어 우리 앞에 다시 찾아왔다.
유로화 통합의 역사는 15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다. 반면 유로화의 등장으로 우리 삶 속에서 자취를 감춘 유럽 각국의 화폐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윤가림의 <다시 찾은 얼굴>은 바로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사라진 시간, 흔적, 오브제에 관한 확장된 차원의 은유일 수 있다. 윤가림이 ‘화폐 위에 새겨진 예술가의 초상’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화폐/국가/힘의 삼위일체와 예술 혼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우회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약간의 언어 플레이를 해보면 화폐 ‘위(on)’의 예술가, 그리고 화폐는 곧 자본이고 자본은 권력이고 국가의 힘이라면 예술은 이 모든 것 ‘위’에 존재한다. 윤가림은 이 예술가들의 머리카락, 콧수염, 눈썹에 정성스럽게 수를 놓으며 자본 위에 우뚝 서 있는 예술혼을 기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2개의 ‘다시 찾은 얼굴들’은 독일문화원 전 공간에 있는 트러프에 조심스레 안치될 것이다. 독일문화원 벽면에는 기념비에 사용되었던 13개국의 22개의 화폐와 관련된 정보들로 구성된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으며, 이 포스터에는 ‘잃어버린 통화’라고 새겨져 있다. 독일문화원을 찾는 사람들은 입구에 걸려있는 이 포스터를 통해서 ‘잃어버린 통화’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투명한 아크릴 박스 속에 정갈하게 배열된 이 기념비들과 만나며 ‘잃어버린 통화/얼굴’을 되찾게 되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유럽의 현대사, 정치경제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김성원, 큐레이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