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on Kalim

윤가림 개인전
<Amid her golden path>에 부쳐

글. 김인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윤가림(1980년생) 작가는 다양한 문화, 기술, 환경, 감각 등을 관찰하고 탐색하며, 사용자와 관람자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구조 혹은 접촉 가능한 매개를 제시해왔다. 이를 위하여 작가는 목공, 전통 자수, 제빵, 전통 다식 등 문화 현상으로부터 파생한 역사성 있는 생산물에 대한 최고의 기술을 직접 익혔다. 그리고 전수받은 기술과 현대미술을 접목하여 프로젝트 혹은 전시 매체의 형식 안에서 그 형식과 개념의 혼성화와 재구조화를 꾀하고 있다.

작가는 2016년 개인전 <세 가지 타입>을 통하여 전시장 안에서 제빵을 실행, 관객에게 배포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형태의 가구들을 제작, 배치함으로써 일상과 전시 매체의 경계를 충돌시키는 혼성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작품으로서 제작된 가구의 형태로부터 확장한 종이접기를 제안하여 전시의 물리적 환경 자체를 관객이 직접 촉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간으로 재구축했다. 2019년에는 코펜하겐의 니콜라이 쿤스트홀에서의 한국-덴마크 교류 전시 <토끼가 거북이로 변신하는 방법>에서 한국 전통 다식을 만드는 워크숍을 포함했는데, 한국의 재료와 도구로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익힌 덴마크인들이 소진되어가는 재료 조달을 위하여 현지 재료를 사용,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융화를 스스로 시도할 수 있도록 했다. 2021년 개인전 <Tactile Hours>에서는 한국 전통 자수 기법과 규범적 도상형식을 서양의 식재료로서의 식물에 대입하거나, 구전으로 그려진 영국 18세기 백과사전의 동물 일러스트에 작가가 상상하는 색채의 자수를 개입시켜 시공간을 초월한 시각 예술가 간의 협업을 시도하였다.

2023년 11월 9일부터 12월 9일까지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에서의 윤가림 개인전 <Amid her golden path>는 2013년도의 “Domestication” 시리즈를 확장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Camouflage” 시리즈는 ‘Time Life Book’이라는 백과사전 형식의 서적에서 ‘Life Nature Library’ 섹션의 사진들을 빌어왔다. 작품의 각 장면은 각종 포유류, 곤충, 조류 등이 야생의 자연 속에서 시각적 의태와 위장술로 생존해가는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동물의 시각적 환경은 흑백이다.
이들은 적을 피하기 위해 빛반사를 이용하거나 주변 환경의 무늬와 형태를 이용하여 자신의 모습을 위장한다. 작가는 특정 시점에서 이 동물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주시하는 존재의 시각을 구현하였다. 이전 작업에서 사용한 자수나 금분 안료는 이번 새로운 시리즈에서 금박(gold leaf)로 대체되었다. 작가는 금을 확대된 프린트의 망점에 한 점 한 점 얹어가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이전의 작업 기법으로 진행한 천의 결을 맞춰서 수를 놓는 기법과 유사하다고 여긴다. 동시에 조각을 전공한 윤가림 작가에게는 피그먼트 위에 접착제와 붙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조각적 덩어리를 구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다루는 재료인 금은 또한 개인이 찾아내고자 하는 역사와 문화적 가치와 더불어 본인이 추구하고 영위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고찰을 상징한다. 광물로서의 금은 재화적 가치를 지닌다. 그뿐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경제, 사회,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 속에서 상징화된 의미를 생산, 내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의 원형을 탐구하고자 하는 윤가림에게 독특한 호기심을 주는 이 금이라는 재료는 당연하게도 여러 작업 안에서 실, 가루, 박 등의 형태로 사용되곤 했던 것이다.

윤가림은 “수공예적 요소는 그 과정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크고 물질에 마음을 담는 과정이기도 하므로 작업을 하는 거의 모든 이유”라고 말한다. 그는 최고의 기술을 지닌 마스터들에게 습득한 기술을 자신의 작업 속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제시해오고 있으며, 이는 배움의 과정이 주는 즐거움, 이를 접목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를 연구하는 과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의 실천과 그 성취감 등을 즐기는 작가의 중요한 작업 태도이기도 하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호기심을 따라 새로운 것을 찾고자 하는 윤가림이 선보이는 새로운 세계는 우리가 바라보고 인식해온 일상에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