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며 숨죽일 때
구나연(미술비평가)ᅠ
윤가림의 작업은 도사리는 것과 도약하는 것의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도사리는 것은 스스로 침잠한 상태로 무엇인가 도모하는 일이며, 도약하는 것은 말 그대로 힘차게 뛰어 오르는 일이다. 도사림과 도약은 어떤 리듬처럼 서로의 상태를 필요로 하는데, 윤가림의 작업에서 일어나는 일도 이와 유사하다. 왜냐하면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공공적이며 수공적 행위와 더불어 자발적인 고립과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은신의 성취가 맞물려 그의 작업의 어떤 동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번 <Amid Her Golden Path>는 그의 작업이 가진 이 같은 양가적 진동의
힘을 뚜렷이 보여주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윤가림의 작업은 직관적 선택보다 매우 확고한 논리를 통해 전개된다. 이번 전시의 camouflage 시리즈는 그가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Time Life Books의 도감을 되찾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백과사전이 제안했던 이국적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기초적 과학과 수많은 상상이 경계 없이 흡수되었던 기억은 여전히 그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때의 헌책을 찾아내어 새로운 패러다임에 묻혀 망각된 지식과 자신의 시간 안에 선명히 남은 도감과 다시 마주한다. 이 과정은 결국 과거라는 시간의 유효성을 되찾는 일이며, 자신의 기억에 새겨진 심상을 회구하여 잊힌 것들과의 작은 숙명을 되찾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그가 오랜 기간 연마한 수공의 방식으로 금빛의 ‘빛’을 부여하여, 과학적이며 수리적 참을 견인하는 수많은 착오의 역사와 방기된채 기록보관소나 고서점의 창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세계를 도약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요컨대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지구를 중심으로 별자리를 가늠하던 시대의 오류와 무모를 전제로 하며, 이는 아마도 소수의 깨어난 현자보다 수많은 범인의 세계를 만든 지적 무구라는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윤가림은 낡은 책 속에 묻혀버린 어느 사진사의 시선에 포착된 동식물의 신비한 순간을 선택하여 망점이 도드라질 정도로 확대하고 거기에 한점, 한점 금박을 입혀 오늘이라는 현재에 펼쳐낸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 과거의 이미지와 기억, 이를 가능케 한 무명의 사진사와 그의 사진, 그 사진에 담긴 동물의 모습과 접촉지점을 형성하고 이와 매듭을 엮듯 금빛의 생동을 부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모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체를 위장하여 도사리고 있는 것들이다. 모두 위태로운 고비 혹은 숨죽임의 긴장을 품고 있지만, 이것은 잠정적 안정과 신체의 극적 변화라는 도약에 앞선 필연적인 절차이자 조응에 다름 아니다. 윤가림은 “동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생태계의 과학적 발견에 따른 이론 등을 뒤섞어 나의 현재에 대입한다”고 말한다. 결국 ‘나’의 상황을 동물의 상태로 표상하려 함은 자신에게 내재하는 도사림과 도약 사이의 요동을 감지하고 이를 암시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유사한 표현 방식으로 독해될 수 있는 2013년 Domestication 시리즈와 이번 Camouflage 시리즈의 가장 큰 차이 또한 이 지점이다. 유라시아 사슴의 뿔에 금분을 입힌 Domestication 시리즈에서, 뿔은 삶과 죽음의 딜레마를 가진 신체적 본성과 인간에 의해 길들여 양육되는 역설을 안고 사진에 담긴 채, 이미지에 입각한 의미의 망 속으로 던져진다. 따라서 뿔 위에 칠해진 금분은 뿔이 지닌 상징과 모순을 형식화한 것이며, 그 의미의 메타포를 명백히 도출하는 금빛의 번역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윤가림의 작업은 직관적 선택보다 매우 확고한 논리를 통해 전개된다. 이번 전시의 camouflage 시리즈는 그가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Time Life Books의 도감을 되찾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백과사전이 제안했던 이국적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통해 기초적 과학과 수많은 상상이 경계 없이 흡수되었던 기억은 여전히 그가 세계와 관계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 때의 헌책을 찾아내어 새로운 패러다임에 묻혀 망각된 지식과 자신의 시간 안에 선명히 남은 도감과 다시 마주한다. 이 과정은 결국 과거라는 시간의 유효성을 되찾는 일이며, 자신의 기억에 새겨진 심상을 회구하여 잊힌 것들과의 작은 숙명을 되찾는 일이다.
또한 이것은 그가 오랜 기간 연마한 수공의 방식으로 금빛의 ‘빛’을 부여하여, 과학적이며 수리적 참을 견인하는 수많은 착오의 역사와 방기된채 기록보관소나 고서점의 창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세계를 도약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요컨대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지구를 중심으로 별자리를 가늠하던 시대의 오류와 무모를 전제로 하며, 이는 아마도 소수의 깨어난 현자보다 수많은 범인의 세계를 만든 지적 무구라는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그리고 윤가림은 낡은 책 속에 묻혀버린 어느 사진사의 시선에 포착된 동식물의 신비한 순간을 선택하여 망점이 도드라질 정도로 확대하고 거기에 한점, 한점 금박을 입혀 오늘이라는 현재에 펼쳐낸다.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된 과거의 이미지와 기억, 이를 가능케 한 무명의 사진사와 그의 사진, 그 사진에 담긴 동물의 모습과 접촉지점을 형성하고 이와 매듭을 엮듯 금빛의 생동을 부여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동물의 모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체를 위장하여 도사리고 있는 것들이다. 모두 위태로운 고비 혹은 숨죽임의 긴장을 품고 있지만, 이것은 잠정적 안정과 신체의 극적 변화라는 도약에 앞선 필연적인 절차이자 조응에 다름 아니다. 윤가림은 “동물이 가진 상징적 의미와 생태계의 과학적 발견에 따른 이론 등을 뒤섞어 나의 현재에 대입한다”고 말한다. 결국 ‘나’의 상황을 동물의 상태로 표상하려 함은 자신에게 내재하는 도사림과 도약 사이의 요동을 감지하고 이를 암시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유사한 표현 방식으로 독해될 수 있는 2013년 Domestication 시리즈와 이번 Camouflage 시리즈의 가장 큰 차이 또한 이 지점이다. 유라시아 사슴의 뿔에 금분을 입힌 Domestication 시리즈에서, 뿔은 삶과 죽음의 딜레마를 가진 신체적 본성과 인간에 의해 길들여 양육되는 역설을 안고 사진에 담긴 채, 이미지에 입각한 의미의 망 속으로 던져진다. 따라서 뿔 위에 칠해진 금분은 뿔이 지닌 상징과 모순을 형식화한 것이며, 그 의미의 메타포를 명백히 도출하는 금빛의 번역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시리즈 모두 오래 전 사진가들이 남긴 이미지를 발굴하고, 이를 확대 인쇄하여
자신의 어휘로 포섭하는 방식의 것으로, 시대를 뛰어넘은 고유한 협업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그가 19세기 The Naturalist’s Library라는 도감에서 동물의 일러스트 이미지에
자수를 입힌 작업과도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책이 출판되었던 당시에는
활동했으나 이제는 잊힌 석판화가들, 그들의 손에서 현현했던 동물의 모습은 고서 속의 소멸된
지식이 되었지만, 오늘을 사는 한 작가가 이를 발견하여 낡은 이미지 위에 그의 손이 수놓으며
덮어간 갱신의 행위는 촉각 없는 시간을 매만지는 것이며,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공명하는
특유의 언어가 된다.
따라서 윤가림이 여러 수공의 기술을 배우고 연마하는 일은 과거와 관계를 맺고 이를 현재로 변용하기 위한 특별한 어휘이다. 이 어휘가 발화되기 위해서는 지금 함께 만들고 배우는 사람들과 기쁨을 공유하고, 이를 창작의 즐거움으로 깨우기 위해 홀로의 성취를 이루어내 다시 한 번 나누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렇게 얻어진 감각의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불연속적 질서를 벗어나 거리낌 없는 영위를 가능케 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그들이 남긴 것들과의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한다.
이번 <Amid Her Golden Path>에서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동물의 이미지를 바라보고 선택한 작가의 시선이 동물의 시각과 같이 흑백의 거친 입자를 통해 드러나고, 반복적인 손길로 찍은 금박을 통해 반짝이며 숨죽이는 또 다른 관계 맺기의 시도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의 성장을 준비하고,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도사린 동물들의 모습 위에서 금박은 금분보다 더 영롱하게 빛을 품어낸다. 그 화면 위에서 그들이 반짝이며 숨죽일 때, 도사림과 도약의 순간은 눈부신 엇물림 가운데 존재한다. 이는 윤가림이 작업을 통해 시대와 장소, 동물과 인간을 엮어 조합하고, 타인과 나의 즐거움을 도모하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엇물림이며, 이것이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윤가림은 “‘아름답다’의 뜻은 곧 ‘자기답다’ 라는 뜻”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다움은 특별한 개별성의 현시 이전에 모순이라는 양태를 떠안을 때 가능하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면서 늘 접촉을 상상하는 것.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이러한 모순의 양태를 필연적인 자기다움이자 아름다움으로 상정하고, 이를 엄정한 자신만의 형식으로 채우기 위해 오랜 시간 특정한 표현 양식을 배우고 익혀 작품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적 발화에 도달한다. 따라서 이번 Camouflage 시리즈의 금빛은 관습적인 가치의 그것이 아니라 자기다움, 아름다움을 담담하고 촘촘하게 노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업의 다양한 실천들은 모두 포괄적인 지향성과 논리에 맞닿아 있다. 그것은 홀로 반짝이며 숨죽일 때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긴장과 예측불가한 만남의 기대를 동시에 품는 태도이며,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장이란 본연의 산물을 시간과 공간의 축적 속에 풀어 놓는 것이다.
따라서 윤가림이 여러 수공의 기술을 배우고 연마하는 일은 과거와 관계를 맺고 이를 현재로 변용하기 위한 특별한 어휘이다. 이 어휘가 발화되기 위해서는 지금 함께 만들고 배우는 사람들과 기쁨을 공유하고, 이를 창작의 즐거움으로 깨우기 위해 홀로의 성취를 이루어내 다시 한 번 나누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렇게 얻어진 감각의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불연속적 질서를 벗어나 거리낌 없는 영위를 가능케 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그들이 남긴 것들과의 관계 맺기를 가능케 한다.
이번 <Amid Her Golden Path>에서는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동물의 이미지를 바라보고 선택한 작가의 시선이 동물의 시각과 같이 흑백의 거친 입자를 통해 드러나고, 반복적인 손길로 찍은 금박을 통해 반짝이며 숨죽이는 또 다른 관계 맺기의 시도를 발견하게 된다. 다음의 성장을 준비하고,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도사린 동물들의 모습 위에서 금박은 금분보다 더 영롱하게 빛을 품어낸다. 그 화면 위에서 그들이 반짝이며 숨죽일 때, 도사림과 도약의 순간은 눈부신 엇물림 가운데 존재한다. 이는 윤가림이 작업을 통해 시대와 장소, 동물과 인간을 엮어 조합하고, 타인과 나의 즐거움을 도모하며 새로운 결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연적인 엇물림이며, 이것이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과정임을 시사한다.
윤가림은 “‘아름답다’의 뜻은 곧 ‘자기답다’ 라는 뜻”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자기다움은 특별한 개별성의 현시 이전에 모순이라는 양태를 떠안을 때 가능하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면서 늘 접촉을 상상하는 것.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이러한 모순의 양태를 필연적인 자기다움이자 아름다움으로 상정하고, 이를 엄정한 자신만의 형식으로 채우기 위해 오랜 시간 특정한 표현 양식을 배우고 익혀 작품으로 실천할 수 있는 미적 발화에 도달한다. 따라서 이번 Camouflage 시리즈의 금빛은 관습적인 가치의 그것이 아니라 자기다움, 아름다움을 담담하고 촘촘하게 노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작업의 다양한 실천들은 모두 포괄적인 지향성과 논리에 맞닿아 있다. 그것은 홀로 반짝이며 숨죽일 때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긴장과 예측불가한 만남의 기대를 동시에 품는 태도이며, 자신을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장이란 본연의 산물을 시간과 공간의 축적 속에 풀어 놓는 것이다.